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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이란

알프레드 노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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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베르하르드 노벨(Alfred Bernhard Novel)은 1833년 10월 21일 건축기사였던 아버지 임마뉴엘 노벨(Immanuel Nobel)과 재력가의 딸이었던 안드리에타 알셀(Andrietta Ahlsell)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알프레드가 아홉살이 될 때까지 일가는 매우 궁핍하게 살아나갔습니다. 어머니는 길거리에서 야채 장수를 하고 두 형은 길거리에서 성냥을 팔아 생계에 보탬을 주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재정 러시아에 있는 한 유력한 정치가의 후원을 받아 러시아의 페테르부르그에서 크게 성공했고, 이 시기는 러시아가 영국을 상대로 크리미아 전쟁을 하고있던 시기 였기 대문에 기뢰나 수중 화약등과 같은 군수 사업이 크게 번창하지 않을 수 없는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크리미아 전쟁이 끝나갈 무렵 군수 산업에 치중하던 부친의 사업은 전쟁의 종식과 더불어 또 다시 파산하게 되었습니다. 빈곤과 부유함의 양극단에서 살았던 알프레드 노벨의 정규교육은 초등학교 2학년 과정이 전부였습니다. 부친의 사업이 번창하여 온가족이 페테르부르크로 이사했을 때 네명의 형제들에게 화학, 역사, 외국어를 위한 가정교사가 들어왔습니다. 당시의 부유층은 학교보다는 가정교사 위주의 교육을 선호하였기 때문입니다.

 

알프레드가 폭약으로 특허를 받은 것은 아버지가 파산하여 페테르베르그에서 철수하고 스웨덴으로 되돌아 온 이후인 1863년 30세 때였습니다. 아버지가 오랫동안 군사용 폭약제조에 종사했기 때문에 폭약을 개조하는 것은 노벨에게는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소브레로라는 프랑스 기사가 발명한 니트로글리세린이라는 당시로써는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폭약을 소개받으면서 노벨의 천재성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위험성이 매우 높으니까 실험에 사용하는 것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발견자의 충고를 무시하고 알프레드는 이 강력한 폭약의 장래성을 예견하고 안전하게 수송하고 강력하게 폭발시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또 실험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니트로글리세린과 흑색 폭약을 혼합시키고 그리고 혼합물을 보통의 도화선으로 폭발시키는 실험을 여러차례 시행했습니다.
(니트로글리세린은 폭발력은 크지만 액체상태였기 때문에수송이나 시공중에 폭발해 버리는 일이 많아서 위험했다.)

 

이런 알프레드는 유언을 통해 자신의 전 재산을 4개 기구를 통해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 경제학 부문에서 ‘지난해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해마다 상을 주도록 했습니다.